때는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인 2002년 초.

난 공익 가서 편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집 생활비가 없어서 산업기능요원을 알아 보게 된다.(이전 편 참고: https://vecto.tistory.com/4)

 

이 회사 저 회사 알아보던 도중 대전 인동 근처에 있는 의료용 (알루미늄)목발 만드는 회사에 처음으로 면접보러 갔다. 내 이력서에는 물리경시대회 시 대회 입상이라는 자랑스러운 문장이 써 있었고...ㅋㅋ 암튼 관리자분이 이력서와 내 얼굴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말투로,

"일이 힘든데 할 수 있겠어?"

엄청나게 큰 기계가 돌아가면서 알루미늄을 쾅쾅 찍어내는데 엄청 무서웠다. 큰 기계에 쫄아서 그 회사는 포기하게 된다.

독일의 거대 굴삭기. 이 사진이 그 당시 내가 받은 느낌과 비슷ㅋ

두 번째 간 곳은 대전1-2공단의 큰 회사였는데 면접관이 우연히도 우리교회 집사님의 아드님-_-; (그집에 몇 번 컴퓨터 조립해주로 가서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 있는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 PASS...

 

세 번째 간 곳은 대전의 ㅎㅁㅅㅇㅅ광학 이라는 회사였는데 꽤 큰 회사였다.

면접은 무난하게 봤고 바로 일하기로 했다.

월급은 거의 최저임금으로 기억하는데 하루 11시간 근무에 60만원 초반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검색해보니 2002년 당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2,100원;; 한달 최저임금 계산해보니 (2100원/시간)(11시간)(25일)=577,500원 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땐 주5일 근무라는 개념자체도 없었다.

 

안경렌즈를 연마(?)하는 부서였는데 약간 더티한 작업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화학 약품도 꽤 많이 썼고 딱 봐도 몸에 좋지는 않아보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일이 힘든 것 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상해서 3일 만에 그만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산업기능요원 형들 3명, 직원 한분이었는데...형들은 주구장창 SEX얘기만 계속 한다. 그리고 나보고 최대 몇 번 자위 해봤냐고 물어보고 자기는 최대 하루에 10번 해봤다고 자랑한다.(븅신...) 점심 먹고 나서 잠깐 쉬는 타임에 어떤 형이 자기 고추 섰다고 만져 보라고 한다. 계속 만지라고 해서 하마터면 만질뻔 했다. 만약 만졌으면 지금까지 손 씻고 있었을듯... 그리고 같이 일하는 직원분은 밖에 사다리 있으니깐 가져오라고 한다. 알고보니 내가 순진해 보이니 그냥 장난친거...;;

직원분은 나보고 없는 사다리 가져오라고 시켰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서 3일만에 그만 두겠다고 말했는데 담당자가 사람 구할때 까지라도 일해달라면서 끝까지 날 놔주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당시 그 회사의 정책상 첫 1주일은 일을 배우는 단계이니깐 돈을 못 받는다. 일주일만 일하고 그만두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러면 0원도 못받는다고 들었다.

그러니깐 내가 일을 더 해줘도 며칠 내로 사람이 구해지면 난 무료봉사 하는게 된다. 그 당시에도 이 방식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 사람은 끝까지 날 잡고 놔주지를 않아서 어쩔 수 없어서 알겠다고 하고 그냥 다음날 부터 회사를 안나갔다. 전화가 불나게 왔고... 나에게 사정을 들은 우리누나가 전화를 받게 된다. 누나는 담당자와 엄청 싸웠다.(꽤 길게 통화함)

누나가 굉장히 내성적 이지만 아직도 누나의 우렁찬 함성이 머리에 박혀 있다.

"사회 생활 처음 하는 애 에게 뭐하는거에요?"

이 때 누나 없었으면 진짜 저 지옥의 문으로 끌려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누나 에게 평생 감사하고 있다.

암튼 누나의 그늘에 숨어서 겨우 이 난관을 헤쳐 나가나 했는데 출근 안하면 병무청에 연락해서 군대에 보내 버린단다.

회사 관계자로 부터 당장 회사 안오면 군대에 보내 버리겠다고 협박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데 나이 어리고 사회경험 없는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문제 일으키면 군대에 끌려 갈수도 있나? 라고 생각하고 병무청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병무청 왈:

"회사에서 군대 못 보냅니다."

 

ㅅㅂㄱㅅㄲ...

아무리 생각해도 20년전 그 회사는 너무 괘씸하다. 오래 지난 일이어도 학폭 같은거 회자되면 연애인 X되는거 많이 보는데 그런 회사는 안 X되는지도 궁금하다.

 

암튼 그렇게 난 시작부터 깨달았다.

회사라는 곳은 내가 다닐 곳이 못 된다는 걸.

이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으며 일평생 내가 회사에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집안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 후 대전의 ㅇㄴㅍ라텍 이라는 벤처기업에 들어가게 된다. (다음 주에 이어서...)

나의 첫 회사는 추노로 마무리 지어졌다.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나는 공부를 못해서 결국 전문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전편 참고: https://vecto.tistory.com/3)

 

비록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첫 수업 부터 우연히 친구를 사귀게 되어서 같이 다니는 친구들 4명정도가 생겼다.

3월 초에 학과 행사에서 처음으로 술을 먹었는데 취하는 것에 대해 궁금한 나는 일부러 취하려고 엄청 마셨다.

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마신건 아니고 소주1.5병~2병 사이로 먹었다.

취했다기 보다는 그냥 어질어질 한 기분이었는데 잠깐 어지러워서 기대어 있었는데 갑자기 집으로 워프ㅋㅋ

가방이 없어서 친구집에 전화했는데 친구아버지 왈,

 

"지금 몇 시인데 전화를 한건가?"

 

시계를 보니 새벽3시...-_-; 죄송합니다 하고 끊었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었다.  새벽내내 오바이트 하면서 앞으로 평생 술은 먹지 않겠다 결심하게 된다.

 

전공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친구들과 수업시간 째고 짜장면 먹으로 가거나 PC방에 스타크래프트 하로 가거나 그런 생활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하여 1학기 학점은 3.28점을 받게 된다. 생활체육이란 과목이 너무 싫었는데 선택과목 이였던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_- 바꿀껄...ㅠㅠ (그런데 전문대는 4년제와 달리 반이란 개념이 강해서 모든 과목을 2년 내내 같이 듣는다.  바꿀수 있는거 알았어도 같이 듣는 친구가 없으니 좀 애매 했을 수 도 있다.)

전문대 1학년 1학기 학점. 생활체육 듣지 말걸...아직도 후회 中

 2학기엔 물리공부를 취미로 하기 위해서 인터넷에 물리카페를 만들게 된다. 지금은 카페가 유령화 되어버렸지만 이 때 친해진 온라인 사람들과 요즘도 연락하고 있다.(이분들은 현재 미국에서 박사따고 MIT등에서 연구 중)

 

학교 수업엔 더욱 더 흥미를 잃어서 공부에 손을 놓게 된다. 2학기 학점은 무려 2.28! 시험에서 장난성 답을 썼는데 교수님이 괘씸해서 F안준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문대 1학년 2학기 학점. 2.28이라는 엄청난 평점! F가 없다는게 다행..

신검을 받았는데 눈이 나빠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게 된다.  정말 만세를 불렀다. 

 

"나 군대 안간다! 히히히히히"

신검에서 보충역 판정 받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나의 목표는 적당히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공익근무요원(=주민센터)으로 칼퇴근 하면서 물리공부 하는게 목표였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청천벽력..같은소리!!

 

"집에 돈 없다. 산업기능요원이 돼서 회사에서 일하면 군대 대체 된다고 하니 내년엔 회사 가라"

 

결국 전문대를 휴학하고 회사(지옥의 문)에 들어가게 된다.

산업기능요원 지원자들. (투르크메니스탄 지옥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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