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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나는 첫 회사에 입사하고 3일만에 추노하게 된다. (이전 편 참고: https://vecto.tistory.com/5)
이후 ㅇㄴㅍ라텍 이라는 회사에 면접보러 가게 된다. 면접 약속일인 2002년 5월 1일에 회사에 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오래 기다리다가 면접을 못 봤던 기억이 있다.(이 때 안 갔어야 했는데...에휴ㅋㅋ) 그 주에 다시 면접을 봐서 합격했고 5월 6일(월) 부터 근무를 하게 되었다.
주야 2교대 였고 주간조는 아침8시 부터 저녁 8시 까지, 야간조는 저녁8시 부터 아침8시 까지였다. 요즘은 주야 2교대 같은 경우 월급이 쎈편이지만 그당시 나는 산업기능요원 이었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고 일을 했다.

그 당시 내가 한일은 삼성전기에 납품하는 정전기 방지용BOX를 만드는 일이었다. 스티로폼의 원료인 EPS를 끓는 물에 불린다음에(이걸 내가 직접 휘져어서 불려야 한다.;;) 금형에 넣어서 마이크로웨이브로 열을 가해서 녹인다음에 자연 냉각하여 굳히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일의 단점은 불량이 자주 나온다는 점이었고 장점은 자연 냉각할때 쉬는시간이 길어서 편하게 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난 야간을 좋아했었는데 새벽에 물리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다니면서 일반물리와 고전역학을 어느정도 독학으로 공부 할 수 있었다. 회사 생활하며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F=-dU/dx 식을 이해 했을 때가 가장 감명 깊었고 기억에 남는다. 그 때의 장소와 장면과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회사생활이 참 힘들었고 울기도 했고 너무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가장 웃긴 에피소드 한개만 써볼까 한다.
몇 년 후 일이 바뀌어서 Micro Drill을 가공하는 작업을 했는데 형들과 나는 일을 빨리 하고 자체 쉬는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다. 자체 쉬는 시간에 나는 Fowles책의 역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내 오른쪽에 앉아있는 형은 아이리스 라는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누가 옆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 들면서 느낌이 싸~~~ 했는데...아니나 다를까...
옆 왼쪽 창문 밖에서 사장이 날 보고 있었다.
"김캐슬~~~~~~~~~~~~~~~~~~~~~~~~~~~~~~~~~~~~~~~~~(엄청 화난 큰소리로 ㅋㅋㅋ)"
일안하고 딴짓하고 있으니 사장이 열받은 것이었다.
내 왼편의 창문은 지붕이 있어서 사람이 올라갈수 없는 곳인데 거길 굳이 올라가서 일 잘하나 감시를 ... 에휴...ㅋㅋㅋ 그렇게 난 순간 얼음이 되었고...(이후생략) 뭐 이건 나름 재미 있는 에피소드 이고... 사장앞에서 대놓고 운적도 있었고 별의 별 경우를 다 겪었지만 다행히도 끝까지 잘 버텨서 2년 9개월의 회사생활을 잘 마치고 전역을 하게 된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당시엔 너무 힘들었고 평생 다시는 회사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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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인 2002년 초.
난 공익 가서 편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집 생활비가 없어서 산업기능요원을 알아 보게 된다.(이전 편 참고: https://vecto.tistory.com/4)
이 회사 저 회사 알아보던 도중 대전 인동 근처에 있는 의료용 (알루미늄)목발 만드는 회사에 처음으로 면접보러 갔다. 내 이력서에는 물리경시대회 시 대회 입상이라는 자랑스러운 문장이 써 있었고...ㅋㅋ 암튼 관리자분이 이력서와 내 얼굴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말투로,
"일이 힘든데 할 수 있겠어?"
엄청나게 큰 기계가 돌아가면서 알루미늄을 쾅쾅 찍어내는데 엄청 무서웠다. 큰 기계에 쫄아서 그 회사는 포기하게 된다.

두 번째 간 곳은 대전1-2공단의 큰 회사였는데 면접관이 우연히도 우리교회 집사님의 아드님-_-; (그집에 몇 번 컴퓨터 조립해주로 가서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 있는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 PASS...
세 번째 간 곳은 대전의 ㅎㅁㅅㅇㅅ광학 이라는 회사였는데 꽤 큰 회사였다.
면접은 무난하게 봤고 바로 일하기로 했다.
월급은 거의 최저임금으로 기억하는데 하루 11시간 근무에 60만원 초반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검색해보니 2002년 당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2,100원;; 한달 최저임금 계산해보니 (2100원/시간)(11시간)(25일)=577,500원 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땐 주5일 근무라는 개념자체도 없었다.
안경렌즈를 연마(?)하는 부서였는데 약간 더티한 작업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화학 약품도 꽤 많이 썼고 딱 봐도 몸에 좋지는 않아보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일이 힘든 것 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상해서 3일 만에 그만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산업기능요원 형들 3명, 직원 한분이었는데...형들은 주구장창 SEX얘기만 계속 한다. 그리고 나보고 최대 몇 번 자위 해봤냐고 물어보고 자기는 최대 하루에 10번 해봤다고 자랑한다.(븅신...) 점심 먹고 나서 잠깐 쉬는 타임에 어떤 형이 자기 고추 섰다고 만져 보라고 한다. 계속 만지라고 해서 하마터면 만질뻔 했다. 만약 만졌으면 지금까지 손 씻고 있었을듯... 그리고 같이 일하는 직원분은 밖에 사다리 있으니깐 가져오라고 한다. 알고보니 내가 순진해 보이니 그냥 장난친거...;;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서 3일만에 그만 두겠다고 말했는데 담당자가 사람 구할때 까지라도 일해달라면서 끝까지 날 놔주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당시 그 회사의 정책상 첫 1주일은 일을 배우는 단계이니깐 돈을 못 받는다. 일주일만 일하고 그만두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러면 0원도 못받는다고 들었다.
그러니깐 내가 일을 더 해줘도 며칠 내로 사람이 구해지면 난 무료봉사 하는게 된다. 그 당시에도 이 방식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 사람은 끝까지 날 잡고 놔주지를 않아서 어쩔 수 없어서 알겠다고 하고 그냥 다음날 부터 회사를 안나갔다. 전화가 불나게 왔고... 나에게 사정을 들은 우리누나가 전화를 받게 된다. 누나는 담당자와 엄청 싸웠다.(꽤 길게 통화함)
누나가 굉장히 내성적 이지만 아직도 누나의 우렁찬 함성이 머리에 박혀 있다.
"사회 생활 처음 하는 애 에게 뭐하는거에요?"
이 때 누나 없었으면 진짜 저 지옥의 문으로 끌려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누나 에게 평생 감사하고 있다.
암튼 누나의 그늘에 숨어서 겨우 이 난관을 헤쳐 나가나 했는데 출근 안하면 병무청에 연락해서 군대에 보내 버린단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데 나이 어리고 사회경험 없는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문제 일으키면 군대에 끌려 갈수도 있나? 라고 생각하고 병무청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병무청 왈:
"회사에서 군대 못 보냅니다."
ㅅㅂㄱㅅㄲ...
아무리 생각해도 20년전 그 회사는 너무 괘씸하다. 오래 지난 일이어도 학폭 같은거 회자되면 연애인 X되는거 많이 보는데 그런 회사는 안 X되는지도 궁금하다.
암튼 그렇게 난 시작부터 깨달았다.
회사라는 곳은 내가 다닐 곳이 못 된다는 걸.
이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으며 일평생 내가 회사에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집안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 후 대전의 ㅇㄴㅍ라텍 이라는 벤처기업에 들어가게 된다. (다음 주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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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나는 공부를 못해서 결국 전문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전편 참고: https://vecto.tistory.com/3)
비록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첫 수업 부터 우연히 친구를 사귀게 되어서 같이 다니는 친구들 4명정도가 생겼다.
3월 초에 학과 행사에서 처음으로 술을 먹었는데 취하는 것에 대해 궁금한 나는 일부러 취하려고 엄청 마셨다.
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마신건 아니고 소주1.5병~2병 사이로 먹었다.
취했다기 보다는 그냥 어질어질 한 기분이었는데 잠깐 어지러워서 기대어 있었는데 갑자기 집으로 워프ㅋㅋ
가방이 없어서 친구집에 전화했는데 친구아버지 왈,
"지금 몇 시인데 전화를 한건가?"
시계를 보니 새벽3시...-_-; 죄송합니다 하고 끊었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었다. 새벽내내 오바이트 하면서 앞으로 평생 술은 먹지 않겠다 결심하게 된다.
전공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친구들과 수업시간 째고 짜장면 먹으로 가거나 PC방에 스타크래프트 하로 가거나 그런 생활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하여 1학기 학점은 3.28점을 받게 된다. 생활체육이란 과목이 너무 싫었는데 선택과목 이였던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_- 바꿀껄...ㅠㅠ (그런데 전문대는 4년제와 달리 반이란 개념이 강해서 모든 과목을 2년 내내 같이 듣는다. 바꿀수 있는거 알았어도 같이 듣는 친구가 없으니 좀 애매 했을 수 도 있다.)

2학기엔 물리공부를 취미로 하기 위해서 인터넷에 물리카페를 만들게 된다. 지금은 카페가 유령화 되어버렸지만 이 때 친해진 온라인 사람들과 요즘도 연락하고 있다.(이분들은 현재 미국에서 박사따고 MIT등에서 연구 중)
학교 수업엔 더욱 더 흥미를 잃어서 공부에 손을 놓게 된다. 2학기 학점은 무려 2.28! 시험에서 장난성 답을 썼는데 교수님이 괘씸해서 F안준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신검을 받았는데 눈이 나빠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게 된다. 정말 만세를 불렀다.
"나 군대 안간다! 히히히히히"

나의 목표는 적당히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공익근무요원(=주민센터)으로 칼퇴근 하면서 물리공부 하는게 목표였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청천벽력..같은소리!!
"집에 돈 없다. 산업기능요원이 돼서 회사에서 일하면 군대 대체 된다고 하니 내년엔 회사 가라"
결국 전문대를 휴학하고 회사(지옥의 문)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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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등학생의 목표는 서울대라고 했던가? 나도 고등학교때는 서울대를 가고 싶었다.
결론부터 쓰자면 지방 3류 전문대에 들어갔다.

변명을 하자면 가정형편이 별로 좋지 않았고(과외X, 학원X, 학습지X) 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이 막 개통되던 시기라서 EBS방송 같이 학습에 도움을 주는 매체도 없었다.
우리 누나는 친구와 함께 학교 쓰레기장에 가서 졸업한 선배들이 버린 학습지를 줏어서 공부했다. 그 학습지 이름은 '블랙박스' 였는데 '케이스'와 함께 나름 인지도가 있었던 학습지로 기억한다. 나는 누나가 그렇게 공부한 학습지를 물려받아서 공부했다. 옛날 학습지라서 그런지 내용이 교과서와 조금 달라서 불편했지만 공통과학 서브노트는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때 집안 사정으로 집이 없어져 버렸다.
길바닥에 나 앉게 생겼는데 다행히 친구 자취방 옆에 빈방이 생겨서 원룸으로 이사와서 살 수 있었다.
친구가 한번 놀러왔는데 좋다고 한 기억이 있다.
"TV도 있고 있을거 다 있네? 진~짜~ 자취방 좋다"
사실은 자취방이 아니라 우리 집이었는데...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다.
언젠가 중학교 동창 친구가 공통과학 등가속도 물리문제를 물어봤는데 중학교때 과학을 잘하던 나였지만 고등학교 와선 공부를 안하고 있었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집에 와서 며칠간 고민하면서 등가속도 파트를 쭉 공부 하여 대부분의 문제를 다 풀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물리에 관심이 많이생겨 물리공부만 하다보니 다른과목엔 소홀하게 되었다.
그당시 난 물리경시대회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그냥 혼자 문제집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공부해서 시 경시대회 나가서 입상 하고 도 경시대회도 나갔었다. 나에게 있어선 큰 도전이었고 즐거웠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다른 과목 까지 다 잘할 자신이 없었기에 하나라도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물리,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은 1도 공부하지 않았고 모의고사 성적은 수학, 과학을 제외하면 바닥수준. 그냥 아는게 전혀 없었다.
그래도 모의고사 보면 항상 자연계 상위 30%정도는 나왔는데 충남대학교 자연대 커트라인 정도의 점수였다. (그당시엔 자연계도 언어120점, 수학80점, 과학72점, 사회48점, 영어80점 = 400점 으로 수학,과학을 아무리 잘 해도 언어,사회,영어에서 죽을 써버리면 노답인 시대였었다.)
정작 수능에선 자연계 상위 50%를 맞아버렸다. 그당시 물리박사가 내 별명이었는데 반 친구들은 나를 볼 때 마다 "물리는 다 맞았어?" 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고... 나는 당당하게 "물리는 다 맞았지" 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내내 수학,물리만 공부하고 있으니 좀 별난 친구로 인식되어 있을 것 이다.(이상하게 담임선생님도 특별히 나의 성적이나 공부에 대해서 태클을 안거셨다. 분명히 다른 과목은 전혀 공부 안하는거 알고 계셨을텐데...)
2년 연속 미달이었던 서울시립대 물리학과를 특차로 썼지만 나때만 10:1의 역대급 경쟁률이 나오면서 떨어져 버렸다.(그당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특차는 수능에서 수학, 과학 둘 다 만점 받으면 100% 합격할 수 있는 전형이었는데 수학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2개 해버리고 1문제를 못푸는 바람에 떨어졌다.)
서울시립대를 시작으로 이후 충남대, 한밭대, 대전기능대(현, 한국폴리텍 대학)에 전부 떨어지는 기염을 토한다.(충남대는 믿거나말거나 예비번호 400번대, 한밭대, 대전기능대(전문대)는 후보에도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을정도.
정말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아니.. 무슨 전문대가 날 떨어트려? 어이가 없네..."

목원대 광전자물리학과에는 합격했었는데 사립대여서 가정형편상 갈 환경도 안되고 해서 포기.(BMW포기)
그래서 등록금 저렴한 어떤 처음듣는 전문대의 컴퓨터정보 계열로 입학하게 된다.
그럼에도 가정형편상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아버지의 아는 분이 대출 보증을 서줘서 내 등록금을 마련했다.(그 당시엔 한국장학재단이 없었다.)
그렇게 서울대 물리학과를 가고 싶었던 물리에 열정있던 고등학생은 처음듣는 지방 전문대에 입학하게 된다.
그 당시 내 심정을 잘 표현해주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있다.

이후편(전문대 생활): https://vecto.tistory.com/4
전문대 1학년 생활 썰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나는 공부를 못해서 결국 전문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전편 참고(https://vecto.tistory.com/3) 비록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첫 수업 부터 우연히 친구를 사귀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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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로 vector를 쓰고 싶었으나 누가 이미 쓰고 있어서 vecto 로 만들었다.
일단은 일기장 형식으로 가볍게 글을 써볼까 생각 중이다.
아래는 유튜브 링크 잘 되는지 테스트.
플러그인 애드온(?)하니 유튭 링크도 잘 된다.
티스토리 마음에 드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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